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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일을 해서 돈을 벌고,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보람도 얻습니다. 지금 한국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일 이야기를 ‘월급사실주의’ 동인 소설가들이 만나 듣고 글로 전합니다.

어쩌다 사범대생이 된 나는 또 어쩌다 교직 이수를 포함한 복수전공도 두개나 하게 됐다. 학기마다, 심지어 계절학기에도 각종 교육학뿐 아니라 전공별 교과교육론과 교재연구법 강의를 들어야 했는데, 소질과 흥미가 없어서였는지 버겁기만 했고, 배운 것들은 시험이 끝남과 동시에 머릿속에서 지워졌다. 그럼에도 1학년 1학기 교육학개론 첫 강의에서 들야마토게임
었던 말, 이제 더는 개천에서 용이 나는 시대가 아니라는 말만은 선명하게 기억한다.
내가 학교를 일터로 삼으려 하지 않았던 건 두려워서였다. 개천은 왜 존재하나, 개천은 넓어지고 개천 용은 소멸한 시대에 무얼 해야 하나, 꿈꾸고 노력해도 달라질 수 없게 된 세상에서 교사로서 무얼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아득해졌다. 학생들에현대중공업주가
게 어차피 제자리일 테니 꿈꾸는 건 쓸데없다고 말하진 않겠지만 노력을 믿어보자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나아가야 할 길을 찾을 수 없던 나는 그만 도망치기로 했다. 그때의 나는 두려웠고, 무엇보다 비겁했다. 여전히 무덥던 여름의 끝자락, 나선씨를 만나러 가는 길에 마음이 복잡했던 건 부끄러운 어제 때문이었다.
그는 서알라딘먹튀
울 소재 일반계 고등학교 두곳에서 300여명의 학생에게 ‘심리학’을 가르친다. 잠깐, 고등학교에서 심리학이라니.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교양 교과로 개설됐고, 수요가 증가하는 추세예요. 수업은 재량껏 꾸릴 수 있는데 저는 활동 중심으로 진행해요. 입시라는 목표가 있는 교과와 달리 ‘P/F(합격/불합격) 평가’를 해서인지 학교에서도 관여하지 않고, 학생에스티오 주식
들도 왜 교과서대로 하지 않는지 묻지 않아요. 자유로운 만큼 교사의 동기와 역량이 중요하죠.”
나선씨는 학생들이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자신이 무얼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지 고민하며, 궁극적으로 삶을 스스로 꾸려 나갈 힘을 키웠으면 한다. 그래서 그의 수업은 지식 습득보다 정서적 힘을 키우고 동기를 끌어내는 데 초점을 둔 활동이 주를 이룬다.케이앤컴퍼니우 주식
매 학기 첫 수업에서 그는 ‘감정 쓰레기통’이라고 적힌 활동지를 나눠 준다. 학생들은 거기에 무기명으로 최근 화가 난 일에 관해 쓰고, 감정을 담아 구겨서 버린다. 그리고 돌아가며 무작위로 뽑은 글을 큰 소리로 읽고 함께 해결 방안을 찾아본다. “출강하는 학교 중 한곳은 예술 중점 고등학교예요. 경제적으로 평범한 가정에서 예술대 입시를 준비하다 보니 학생들이 부모에게 갖는 미안함이 커요. 레슨을 받으면서 쌓이는 스트레스까지는 말할 수 없는데 이런 활동을 통해 털어내기도 해요.”
그의 수업에서 학생들은 ‘명상’과 ‘나무 그리기’도 한다. 눈을 감고 음악을 들으며 몸과 마음을 이완한 후 한그루의 나무를 떠올린다. 또 자신이 상상한 나무를 종이에 그린다. “게슈탈트 집단 상담에서 했던 건데 제게 의미 있는 활동이었고, 그래서 현장으로 끌고 왔죠.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한명씩 만나서 나무 그림을 해석해주거든요. 그걸 계기로 아이들이 마음을 열기도 해요. 학교 부적응적 학생도 제가 긍정적인 관심을 보인다는 걸 인지하면 조금은 달라지더라고요. 라포르를 형성하는 데 도움이 돼요.”
2학기가 시작되고는 ‘이번 학기를 마친 나’를 써보기도 했다. 심리학자 마이켄바움이 ‘자기 언어화’를 통해 말했듯 인간은 말하는 대로 행동하는 경향이 있으니, 목표를 세우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할 일을 생각해 보는 활동이었다. “가정의 관심과 돌봄을 받는 몇몇을 제외하고는 무기력한 학생들이 많아요. 자기주도학습 시간에도 딴짓하거나 그마저도 안 해요. 전반적으로 뭘 하겠다는 의지가 부족하고 시작하기도 전에 포기해요. 어차피 좋은 대학에 못 가는데, 노력은 왜 하나 싶은 거예요. 잘하는 아이가 더 잘하게 하는 것도 중요하죠. 근데 그보다 ‘하고 싶다’와 ‘하기 싫다’의 양가적 마음을 가진 학생의 동기를 끌어내는 데, 그 아이가 하고 싶은 일을 찾고, 또 스스로 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데 집중하려고 해요.”
나선씨는 언론에서 중고등학생들이 편중적으로 다뤄지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교권이 무너진 것도, 문제가 있는 학생이 있는 것도 맞아요. 하지만 부분으로 전체를 판단해서 ‘요즘 애들은 다 이렇다’고 재단하는 게 아쉬워요.” 그는 교사와 학생 사이의 일도 상호작용의 결과며 교사의 대처가 중요하다고 본다. 문제는 교사의 무기력 역시 커졌다는 것. “학생, 또 학부모와의 사이에서 갈등 발생 시 전적으로 교사 혼자 대응해야 하는 시스템도 문제고요. 교사의 성장 욕구를 학교 조직이 채워줄 수 있나 의문도 들어요. 학교가 학생을 보듬어주지 못하게 되는 데 영향을 끼치는 요인들이죠. 이런 상황에서 심리학을 가르치는 사람으로 해야 할 일을 고민하게 돼요.”
그는 학생들과 마주할 때 상담 장면에서는 ‘맞고 틀리다’의 개념이 없음을 상기한다. “교육 장면에서 틀린 건 틀렸다고 해줘야 하나, 저는 학생의 의견이나 행동에 틀렸다고 말하지 않아요. 생각을 확장하게 하고 다른 방향을 제시하려고 하죠. 작은 거라도 칭찬하고 응원해주고요. (중략) ‘얘들아, 오전 8시에 등교한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야.’ ‘자리에 앉아서 듣기 싫은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잘하는 거야.’ ‘학교는 지식 습득만 하는 곳이 아니거든. 너희는 신인류, 호모 헌드레드(Homo-hundred)야. 평균 수명이 100세가 넘으니 아직 시작 단계인데 벌써 한계를 정하고 포기하는 게 안타까워. 그러니까 하나라도 해 보자, 함께.’”
변화의 작은 싹을 피워내길 바라며 그는 무기력이 만연해 있는 학생들에게 말을 건넨다.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삼기 전 그는 교육과 관련 있는 일들을 해왔다. 대학에서 2년간 외국인 유학생을 담당하는 행정 업무를 보았고, 교육부 산하 공공기관에서는 7년을 근무했다. “20대 초반에 의미 있는 삶에 대해 고민이 많았어요. 그러다가 복수전공으로 상담심리를 하게 됐는데 심리와 상담은 저 자신을 알아가고 이해하는 길이라 좋았어요. 공공기관에서 일하면서 교육대학원에 진학해 상담심리를 더 공부했고, 청소년 상담을 해야겠다고 결심하고는 회사를 그만뒀어요. ‘입시’나 ‘진학’과 관련 있는 일을 경험해 보는 게 도움이 되겠다 싶어 입학사정관으로도 일했죠. 이건 ‘생기부’를 봐주는 데 도움이 돼요.”
학생의 학교생활 전반을 기록한 공식 문서인 ‘학생생활기록부’(이하 생기부)는 입시에서 중요한데 자신의 강점과 더불어 어떤 이유로 어떤 진로를 꿈꾸는지 등이 종합적으로 담겨야 한다. “요새는 외부 컨설팅도 많이 받고 챗지피티(ChatGPT)로 작성하기도 해요. 저는 조금이라도 좋으니 직접 쓰게 해요. 심리학적으로 접근해서요. 발표도 하는데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또 자기 언어로 표현하는 기회가 되는 거죠. 생기부 전반에 걸쳐 발전시킬 부분을 조언해주기도 해요. 이것도 휴게 시간을 활용합니다.”



심리학 수업 시간에 하는 활동지. 나선씨 제공


두 학교에서 일한다는 건 그가 정교사나 기간제교사가 아닌 시간강사라는 뜻. “제가 주당 각각 14시간, 6시간 가르치거든요. 14시간 일하는 학교의 경우 심리학 수업이 총 16시간인데 2시간은 지리 교사 담당이에요. (그는 언급하지 않았으나 1주 15시간 미만으로 일하는 ‘초단기간 노동자’는 4대 보험 중 일부를 적용받지 못한다.) 4시간 수업이 있는 날 시험 감독을 2시간 하면 그걸 4시간으로 인정하는 곳도, 2시간만 인정하는 곳도 있어요. 1, 2교시 수업은 대개 시간강사의 몫이죠. 아, 방학이 끝나기 전에 2학기 시간표를 받았는데 공강이 3시간이더라고요.”
300여명의 생기부를 작성하는 일은 강의 외 노동에 해당하나 그에 대한 수당은 책정되지 않는다. 수업 너머에서 학생들과 함께했던 일들이 고려되지 않았다는 생각에 그는 학교 측에 부당함을 제기했다. “면담 후에 시간표는 바뀌었어요. 근데 비슷한 상황에서 그냥 받아들이는 강사도 많아요. 시간강사로서 한계는 종종 느껴요. 수업 때 활용할 수 있는 교육 기자재나 에듀테크 관련 연수를 받고 싶어도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게 현실이에요.”
그는 ‘전문상담교사’로 교원 임용 시험을 준비하기도 했었다. “상담교사는 상담실에 상주하며 찾아오는 학생을 만나고,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자살 예방 교육 같은 캠페인을 진행해요. 기간제 상담교사직에 지원해 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은 적이 있는데 안 하겠다고 했어요. 전문상담교사는 이중관계의 발생을 막기 위해 수업과 상담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데, 저는 둘 다 관심이 있거든요. 그래서 정교사가 되는 일이 절실하지 않았던 듯해요. 시험을 준비한 경험이 학생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는 마음에서 시도했던 거죠.”



나선씨가 읽는 심리학 관련 책들. 나선씨 제공


끝으로 ‘다음 해의 나선’을 그려보자고 했다. “어떤 수업을 할지 고민하고 있겠죠? 기회가 주어지는 한 계속 가르치고 싶어요. 또 본격적으로 개인 상담소를 개설하려고 해요. 제가 원하는 상담 프로그램을 적용해서 상담하고, 상담 공인 자격증도 추가해서 역량도 강화해야죠. 심리학 강사와 상담사로서 입지를 다지고 학교 안과 밖을 이어주는 일을 하려고 해요. 학교 내에서 상담이 필요한 아이를 찾아 실제 상담으로 연계해주는 거죠. 학생들과 함께하면서 대상자를 성장시켜 나간다는 기쁨을 느껴요. 더불어 스스로 성장하는 기분을 경험하고요. 노력하고 변화하는 아이들을 보며 저도 무얼 할 수 있는지 더 생각해요. 제가 그들에게 무언가 준 거 같지만 실은 받은 거죠.”
꿈과 노력을 강조하며 변화의 가능성을 외치던 속담은 오래전 힘을 잃었고, 지금은 ‘수저론’이 탄탄하게 자리 잡았다. 일본에서도 ‘오야 가차’(부모 뽑기)라는 신조어가 통용된다고 한다. 모든 게 부모의 영향이라서 태어남과 동시에 삶이 결정된다는, 전적으로 운이라고 외치는 시대에, 그러나 달라질 수 있다고 믿는 이가 있다. 내가 만난 나선씨는 가정, 학교, 지역사회에서 방치되는 아이들에게 누군가 관심을 보인다면 나아질 거라는 믿음으로 수업하고 상담하는, 그렇게 ‘일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교육 현장에는 분명 더 많은 나선씨가 있을 것이다. 내가 도망친 세계에 발을 디디고 뚜벅뚜벅 걸어 나가는 이들에게 존경과 감사를 보내며 이 글을 쓰는 동안 복잡했던 마음이 조금은 잠잠해졌다. 늦여름의 어느 날들이 두렵고 비겁했던 마음 일부를 가져간 것도 같다. 조각의 빈자리에서 생각한다. 그럼 나는, 소설을 쓰는 나는 무얼 해야 하나.
소설가 지영



지영 작가


지영 l 장편소설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 앤솔러지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어제를 기억하는 여덟 개의 방식’, ‘킬러 문항 킬러 킬러’가 있다. 5·18 문학상 신인상, 수림문학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