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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면 쏴버리겠어."
머리카락을 빨갛게 염색한 중년 여성이 38구경 권총의 총구를 깡마른 남성의 허리춤에 겨눴다. 여성의 이름은 미리암 로드리게스. 2년 전 멕시코 동북부 타마울리파스주(州) 산페르난도 지역을 장악한 마약 카르텔 세타스에 납치된 카렌(당시 21세)의 어머니다. 남성은 '플로리스트'로 불리던 세타스 조직원이었다. "내 딸에게 나쁜 짓을 한 놈들을 전부 찾아낼 거야.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하겠어."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운 무법천지에서 딸을 우체국 공인인증서 되찾기 위해 미리암은 직접 나설 수밖에 없었다. 이날도 그는 플로리스트를 붙잡아 경찰에 넘겼다. 네 번째 검거된 '표적'이었다.



미국과 접경한 멕시코 동북부 지역에 위치한 산페르난도. 그래픽=강준구 기자


이것은 서울 아파트 전세 실화다. 딸을 잃은 엄마의 마약 카르텔 추적기. 사건의 전모는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 기자인 아잠 아흐메드가 4년간 취재 끝에 완성한 범죄 르포르타주 '두려움이란 말 따위'에 담겨 있다. 아흐메드가 수백 시간에 걸쳐 100회 이상 관계자를 인터뷰하고 기밀로 봉인된 2만 쪽 넘는 사건 파일, 재판 기록 등을 샅샅이 훑어 쓴 책이다. 앞서 그는 '미국은 어떻게 비씨카드모집인 아프가니스탄을 잃었는가'라는 제목의 연재물로 2025년 퓰리처상(해설보도 부문)을 받았다.

딸을 빼앗긴 엄마의 마약 카르텔 추적기
책은 폭력과 범죄가 일상이 된 국가 실패의 상징적 장면을 길게 비춘다. 마약 카르텔의 성장 뒤에는 70년 넘게 일당 독재한 제도혁명당(PRI)의 비호가 있었다. 정계는 물 올크레딧 6등급 론이고 검경, 세관 공무원들과도 유착한 마약 카르텔은 PRI가 실권하면서 생긴 권력 공백을 파고들었다. 산페르난도 역시 카르텔 간 이권 투구의 각축장이 되면서 공권력의 통제 밖에 놓이게 된 경우다. 미국 텍사스주와 접한 주요 밀수 통로였기 때문이다.



두려움이란 말 따위·아 러시앤캐시 장학금 잠 아흐메드 지음·정해영 옮김·동아시아 발행·424쪽·2만 원


걸프 카르텔과 유혈 충돌 끝에 갈라 나온 세타스는 2010년 산페르난도를 장악했다. 훈련받지 않은 폭력배에 불과했던 기존 마약 카르텔과 달리 세타스는 특수부대 출신이 주축이었다. 이들은 돈만 된다면 물불 가리지 않는 잔혹함으로 공포의 대상이 됐다. 몸값을 노린 납치나 대규모 학살도 서슴지 않았다. 당시 은행에서 납치 피해자 가족을 위한 대출 상품이 나왔을 정도다. 세타스의 폭력은 점점 더 미리암 가족 같은 평범한 시민들에게 마수를 뻗었다. 2014년 1월, 카렌이 납치됐다.

슬픔과 복수심을 연대로
세타스는 거액의 몸값만 챙기고 카렌을 돌려보내지 않았다. 미리암은 경찰이 손 놓고 있는 사이 세타스 조직원 하나하나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뒤져 실제 이름과 관계도를 파악하고, 이들을 미행하고, 잠복하고, 탐문했다. 불과 2년 만에 미리암이 작성한 추적 명단 속 용의자 6명이 감옥에 갇히고, 4명은 사살됐는데 그 모든 과정에서 미리암이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실종된 자녀를 둔 엄마들이 2017년 5월 11일 멕시코 멕시코시티에서 반정부 시위를 벌이고 있다. 멕시코시티=AFP


2016년 2월 10일, 미리암은 집단 학살 암매장지였던 한 목장에서 수습한 카렌의 갈비뼈로 장례를 치렀다. 복수심으로 시작했던 미리암의 싸움은 다른 실종 피해자 가족들과의 '슬픔의 연대'로 이어졌다. 수사 당국은 무책임하고 무능했지만 훗날 가해자를 단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건을 기록하고, 고소장을 제출하는 일이 중요했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다른 피해자 가족을 돕는 일에도 적극 나섰다. 단체를 꾸려 정부를 압박하고, 수사 재개를 요구했다. 또 암매장지에서 발굴된 유해의 신원을 확인하는 실무단 조직에도 힘을 보탰다. "피해자 가족단체의 회원 수가 늘면 개인적 비극은 사회적 위기가 되고, 위기감을 키우는 것만이 정부의 행동을 촉구할 유일한 길"이라고 그는 확신했다.
이런 미리암은 세타스에 눈엣가시였다. 2017년 어머니의 날인 5월 10일 밤, 산페르난도 지역 세타스 두목인 엘 우고의 사주로 미리암은 자택 앞에서 총격을 받고 숨졌다. 세타스 치하 많은 이들이 두려움에 눈을 감고, 입을 다물었지만, 미리암은 끝내 불의에 맞섰다. 생전의 그는 세타스의 살해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절대 두려워하지 마. 두려워할 이유가 없어. 두려움에 휘둘려선 안 된다, 특히 여자는."
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