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은희 연출가·전 인천시립극단 예술감독


제5회 인천아트쇼가 펼쳐진 지난주 나흘간 송도컨벤시아 전시실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필자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미술작품뿐만이 아니라 모여든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다. 특히 필자와 동행인들은 유모차 안의 아기들과 젊은 부부들, 보호자 없이 또래끼리 관람하러 온 초등 어린이들에게 감동의 환호를 보냈다. 그러고 보니 필자 또한 그 나이에 초등학교 전학서류를 떼어 이사 간 서울 우리집을 기차 타고 버스 갈아타고 혼자 찾아갔으니 친구와 함께라면 어딘들 못 찾아가 오션파라다이스게임 겠냐 싶기도 했다.
서울로 전학해야 했던 그 나이 즈음… 필자는 한 가지 큰 충격을 받았지만 그로 인해 옳지 않은 일에 대해 목소리를 낼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일생을 되돌아봐도 가장 용감한 시절이었다. 그 한 가지 큰 충격은 전학해서 첫 미술 시간에 그린 필자의 그림이 교실 뒤 게시판에 붙지 않은 것이었다.
그때까지 필 사아다쿨 자의 그림이 게시판에 붙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그때 그 충격은 머리와 가슴에 한꺼번에 총 맞은 것 같은 충격이었다. 또 도무지 생활의 갈피를 잡을 수 없을 정도의 첫 시련이었다.
그 다음 주도… 거의 한 달 정도 필자 그림은 교실 게시판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날이 지나며 친구들끼리 있을 때, 담임선생의 불공평한 처사를 겪은 릴짱릴게임 얘기와 친구들의 불만과 서러움을 알 수 있었다. 담임선생은 학기 시작부터 몇 아이들만 편애했고 차별대우 받은 다수의 아이는 끼리끼리 작은 소리로 수군수군할 뿐이었다. 누적된 불만들은 분명 아이들을 주눅 들게도 하고 학교생활이 즐겁지 않게 했다. 어린 필자는 옳지 않은 일을 저지르는 담임선생에 대해 분노가 솟구쳤다. 머릿속은 온통 그 생각뿐이었다.
릴게임바다이야기그리고 미술 시간이 있던 어느 날, 하교하던 필자는 왜 그랬는지 뒤로 돌아 학교로 달리기 시작했다. 한달음에 달려가 교실 뒷문을 열었다. 교실은 텅 비어 있었고 담임선생도 없었지만, 교단 위에는 우리가 미술 시간에 그린 그림들이 어지럽게 펼쳐져 있었고 담임선생의 총애를 받는 몇 아이들이 게시판에 붙일 그림들을 장난 섞인 말과 행동으로 '뽑기'를 사이다쿨접속방법 하고 있었다. 더는 참을 일도 망설일 일도 아니었다.
이틀 뒤 자치회의(HR)시간, 기타 의견 순서가 되자 "의장!" 손을 번쩍 들고 발언권을 얻어 또랑또랑한 말투로 "담임선생님께서는 선생님이 해야 할 일을 '올바르게! 똑바로!'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라고 했다.
교실은 일시에 다 같이 숨쉬기를 잠깐 멈춘 것 같았다. 친구들은 담임선생에게 시선이 꽂혔고, 담임선생이 두 눈이 휘둥그레져 의자에서 일어서자 다시 멈췄던 숨을 되찾은 친구들의 시선은 일제히 필자에게 꽂혔다. 어린 필자는 담임선생의 눈을 마주 보며 친구들의 억울한 사연들 몇 가지와 마지막에 미술 시간에 그린 그림 중에 아이들의 그림 뽑기에 대한 예시를 들어 담임선생의 옳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여기저기서 "맞아! 맞아!"하며 어린 필자의 주장에 동조하는 소리가 제법 커졌다. 담임선생은 교실 분위기에 밀린 듯 떨떠름한 표정으로 "알았어…"하고 다시 의자에 앉으며 혼잣소리로 "쪼끄만한 것이…"라고 했다.
그 후로 왠지 그림 그리기에서 마음이 멀어졌다.
어릴 적 이 시절, 이 기세를 생각하면, 올바르게! 똑바로! 판결하는 법관이 될 법도 하지만 지금의 현실은 세 살짜리 집안 손자에게 '웃겨 죽겠어' 했다가 그 자리에서 '죽겠어는 좋은 말이 아니야'라고 지적받으며 고모 할미가 모르는 걸 가르쳐 줘서 고마워'하고 대답하며 산다. 그리고 인천아트쇼에서 그림 구경하며 전시 마지막 닐에는 장 미셀 바스키아 그림책 원서를 샀다는 뿌듯함에 젖어 희희낙락하며… 일개 연극인으로 지내고 있다.
/박은희 연출가·전 인천시립극단 예술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