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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노래를 불렀는데 괜찮긴 했어요. 힘이 될 때까진 또 음악을 하자, 대신 힘이 있을 때 내려오자 싶었죠. 5년만 더 하자고 한 게 벌써 2년 지났네요.”

한국 나이로 일흔 둘, 가수 전인권도 끝을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솔직히 나이는 모르겠다. 앞으로 10년은 거뜬하다”며 “나이 먹은 사람들 다 ‘아직 좋다’고 하는데, 나도 그렇다. 아직 좋다”고 농을 던졌다. 느리 수원파산신청 게 말을 이었지만, 자주 웃었다. 식당의 소음과 노화성 난청으로 기자에게 질문을 두세 번 다시 청할지언정, 흘려듣는 법은 없었다. 짙은 선글라스 너머로 상대와 지긋이 대화했다.



가수 전인권이 흰 유화 물감이 묻은 검은색 자켓 차림으로 서울 마포구의 연습실에 나타났다. 들국화 휴대폰연체조회 40주년 공연 준비에 한창인 그는 “그림만 그리는 시간을 3년 정도 더 갖고 싶다. 인물화를 좋아하고, 자화상도 그린다”고 했다. 이충우 기자



지난 16일 서울 마포구의 한 음식점에서 전인권을 만났다. 20~21일 서울 연세대 대강당에서 여는 ‘들국화·전인권 40주년 콘서트- 디딤돌 중도상환수수료 마지막 울림’을 앞두고 내리 3시간의 합주 연습을 마친 참이었다. 당초 연습실에서 인터뷰를 이어가기로 돼 있었지만 그는 밴드 멤버들 식사를 챙기며 “먹으며 하자”고 했다. 정작 연주에 대해선 별 말 없이 “아까 그 곡은 너무 느리게 했나?” 정도. 그는 “연주해보면 각자 다 아니까 말은 안 한다”고 했다.

‘한국 대중음 스마트폰개통확인 악 100대 명반 1위’에 오른 들국화 1집이 올해로 발매 40년째다. ‘행진’ ‘매일 그대와’ 등 명곡이 이 담긴 음반이다. 보컬 전인권을 필두로 최성원(베이스), 고(故) 허성욱(키보드), 고 조덕환(기타), 고 주찬권(드럼) 등 1980년대 한국 밴드 음악의 전성기가 시작된 때다.
들국화란 이름으로 선 첫 무대는 1983년 서울 종로 우리은행캐피탈 였다. 훗날 발매된 ‘그것만이 내 세상’ ‘제발’ 등이 이때 연주됐고, 현장을 충격에 빠트렸다. 전인권은 “당시엔 메시지 강한 노래들이 없었기에 사람들이 너무 좋아했다”며 “우리에겐 억울하고 힘든 게 많으니 개인적 이야기도 노래로 풀어냈다”고 했다. “(들국화 1집은) 사회에 대한 반항이었죠. 들국화는 군부를 무서워하지 않았어요. 이 사회에서 저 사회로 옮겨갈 때 사람들은 다 싫증이 난 상태예요. 그때 우리가 달래주고, 저 사회로 나아간 거죠.”



대한민국 100대 명반 1위인 들국화 1집 발매 40주년을 맞은 올해, 전인권은 여전히 “연습을 안하고 무대에 올라가면 확실히 다르다”며 “매일 노래 연습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충우 기자



전인권은 이후 솔로로도 ‘사랑한 후에’ ‘돌고 돌고 돌고’ ‘걱정말아요 그대’ 등 히트곡을 냈다. 모두 시대를 뛰어넘어 지금까지 생명력을 이어온 노래다. 그는 “노래가 갖는 의미는 ‘자유롭게 살자’는 것, 그것 하나”라고 했다. “당시 우리가 부른 노래나 즐겨 듣던 외국 곡엔 거의 다 그런 메시지가 있었어요. 친구나 정직함에 대해 얘기했죠. 오디오도 흔치 않을 때라, 내가 24살에 돈 모아 어렵게 산 우리 집 오디오를 다같이 듣곤 했죠. 그때 들은 LP 3000장을 흡수한 거예요.”

그때 그 멤버들은 옆에 없지만, 추억을 회상할 때면 전인권은 “멋있었다” “끝내주는 동생이었다”며 좋은 말들을 했다. “이제 나이가 일흔 둘이니 원년 멤버로는 못하죠. 그래도 음악에 대한 애착을 내가 많이 갖고 있어요.” 그는 오랫동안 음악을 해온 비결을 묻는 말엔 “난 사람을 좋아하고 정이 많다. 사람들을 사랑한다고도 볼 수 있다”고 답했다.
이번 공연에선 들국화 대신, 10여 년 호흡을 맞춘 전인권 밴드의 신석철(드럼), 김정욱(베이스), 조승연·이서종(키보드), 정현철(기타)이 함께다. 신곡 ‘축하해요’도 공개한다. “여기까지 잘해온 나와 듣는 사람을 향한 위로”를 담았다. “어느 날 내가 얼마나 강하고 귀한 사람인지 모르고 있었단 생각이 들었어요. ‘홀로 외로운 의자에서 일어나, 비바람에 맞서 바다에 우뚝 선 당신, 축하해요, 축하해요…’”



20~21일 ‘들국화·전인권 40주년 콘서트 - 마지막 울림’을 앞두고 서울 마포의 한 연습실에서 만난 가수 전인권(왼쪽 넷째)과 밴드 멤버들. 이충우 기자




‘행진’ 속 가사 ‘추억의 그림’처럼강릉 경포대서 1년간 그림 그려“그런 시간 3년 더 갖고 싶다”
노래 가사를 섞어 답하던 그가 문득 “많이 했네요. 많이 했어요, 내가 계속 나와서. 내 인생이 참 희한해요. 정말 희한해요”라고 연기처럼 말을 뱉었다. 그는 1990~2000년대 몇 차례 마약 사건으로 구속됐지만, 음악을 통해 재기했다. 요즘은 술 대신 누룽지와 우유로 끼니를 챙긴다며 “우유는 신이 내린 최고의 선물”이라고 몇 번이고 강조했다. 정작 고기 몇 점만 먹고 젓가락을 내려놓기에 식사를 더 권했더니 “우유를 두 그릇이나 먹고 왔다”고 할 정도다. 집 근처 삼청공원에서 하루 3km씩 걷고 있고 아픈 데도 없다고 했다.




20~21일 ‘들국화·전인권 40주년 콘서트 - 마지막 울림’을 앞두고 어쿠스틱 기타를 치며 밴드 멤버들과 합주 연습하는 전인권. 이충우 기자



혼자 있을 땐 노래 연습을 하거나 그림을 그린다. 그는 “5년 전 강릉 경포대에 가서 1년 동안 그림만 그린 적이 있다”며 “지금 당장이라도 그런 시간을 3년쯤 더 갖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입은 검은색 재킷에도 유화 물감 자국이 군데군데 묻어 있었다. “인물화를 좋아해요. 얼굴은 조금만 찡그리거나 붉어져도 금세 달라지잖아요. 자화상도 그리고요.”

40년 전 들국화 1집에 담긴 전인권의 유일한 자작곡, 1번 트랙 ‘행진’이 떠올랐다. 1980년대 민주화 시위대가 부르곤 했던 노래, 지금은 록 페스티벌에서 젊은이들이 떼창하는 노래가 됐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전인권은 자기 자신에게 이 노래를 건넨다. 그는 “가사는 언제나 나에게 먼저 오고, 그것을 잘 다듬어 대중에게 내보내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나의 과거를 사랑할 수 있다면/내가 추억의 그림을 그릴 수만 있다면/행진, 행진, 행진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