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맨홀'의 주인공 선오(김준호)는 소방관 아버지로부터 가정폭력을 당한 트라우마를 애써 숨긴 채 살아간다. 사진 마노엔터테인먼트


사람들은 1년 전 화재 현장에서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고 순직한 소방관 아버지를 영웅이라 칭송한다. 하지만 소년에게 아버지는 자신과 누나를 학대하고, 엄마에게 상습적 폭력을 가한 가해자일 뿐이다.
하지만 늘 그렇듯 삶은 아이러니하다. 그토록 혐오했던 아버지의 죽음은 절망의 나락에 빠진 소년을 구해내는 계기가 된다.
영화 '맨홀'(19일 개봉)의 줄거리다. 소설 『합체』로 등단해 야마토통기계 7권의 작품을 세상에 내놓고 요절한 박지리 작가의 동명 베스트셀러가 원작이다. 메가폰을 잡은 이는 한지수(37) 감독. 단편 '캠핑' 등으로 미쟝센 단편영화제 최우수상을 받고, 넷플릭스 공개 예정인 영화 '대홍수'(김병우 감독)의 공동 각본을 쓴 신예 연출가다.



영화 ' 릴게임손오공 맨홀'을 연출한 한지수 감독. 사진 마노엔터테인먼트


지난 7일 서울 마포구 영화사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청소년 일탈, 가정 폭력이란 무거운 소재에 짓눌리지 않고 이야기를 힘 있게 끌고 가는 원작에 매료됐다"면서 "원작의 다층적인 아이러니를 세밀한 심리 묘사로 표현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뽀빠이릴게임고인이 된 아버지를 용서하기로 했다는 엄마와 누나 선주(권소현)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던 고교생 선오(김준호)는 우연히 만난 불량한 친구들과 함께 어울린다. 애써 상처를 숨긴 채 살아가던 선오의 일상은 조금씩 균열이 가기 시작하고, 외국인 노동자 폭행치사 사건에 휘말리면서 법의 심판을 받게 된다.
선오의 아지트이자, 어두 바다이야기비밀코드 운 심연을 상징하는 맨홀 공간은 원래 선오 남매가 아빠의 폭력을 피해 숨던 피난처였다. 이 곳에 또 다른 폭력의 결과물인 외국인 노동자의 시체가 유기되면서, 맨홀은 안식과 결핍, 폭력, 죄책감이 뒤섞인 아이러니한 공간이 된다.



영화 '맨홀'에서 어린 선오가 가정폭력의 피난 야마토게임장 처인 맨홀 공간을 들여다보는 모습. 사진 마노엔터테인먼트





영화 '맨홀'의 주인공 선오(김준호, 가운데)는 소방관 아버지로부터 가정폭력을 당한 트라우마를 애써 숨긴 채 살아간다. 사진 마노엔터테인먼트





영화 '맨홀'의 선주(권소현)는 연극을 통해 과거의 가정폭력 트라우마에서 벗어난다. 사진 마노엔터테인먼트


가정 폭력 트라우마를 누나 선주는 연극을 하며 극복해낸 반면, 선오는 시간이 갈수록 더 깊숙한 '구멍' 속으로 빠져 든다. 한 감독은 "내면의 구멍을 덮어놓은 채 삶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선주, 과거와 결별하지 못하고 구멍에 빠져 허우적대는 선오를 대비시키고 싶었다"고 말했다.
다른 청소년 성장 영화들과 달리, 이 영화에선 주인공 선오에게 쉽게 감정이입이 되지 않는다. 덮어놓고 응원을 보내기도 애매하다. 선오에 공간적·심리적 거리감을 둔 감독의 연출 때문이다.
"대사 등을 통해 행동이 다 이해되는 캐릭터가 있는 반면, 이해는 쉽지 않지만 정서적으로 납득이 가는 캐릭터가 있는데, 선오는 후자에 가깝습니다. 원작에도 선오가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독백하는 대목이 많아요. 범죄를 저지른 선오를 너무 앞서 변호하고 응원해선 안된다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선오는 그토록 혐오했던 아버지의 폭력성을 대물림하게 되고, 자신의 유일한 안식처였던 맨홀은 폭력을 은폐하는 장소로 변질된다. 게다가 영웅 아버지 덕분에 가벼운 처벌을 받는 등 영화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연속적으로 보여준다. 이를 통해 한 감독은 '삶은 아이러니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영화 '맨홀'의 주인공 선오(김준호)는 소방관 아버지로부터 가정폭력을 당한 트라우마를 애써 숨긴 채 살아간다. 사진 마노엔터테인먼트


"가장 희망적인 순간에 절망이 닥치고, 절망 후에 희망이 찾아오기도 하잖아요. 이 모든 아이러니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는 걸 영화를 통해 말하고 싶었습니다."
이는 결말 부분에 희미하게나마 희망의 여운을 남긴 이유이기도 하다. "처음엔 선오가 덩그러니 혼자 남는 결말을 구상했지만, 누군가 그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것으로 바꿨다"면서 "이를 통해 선오가 사람과 세상에 대한 믿음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고 말했다.
운명의 장난처럼 선오에게 갱생의 기회가 주어졌지만, 진정한 구원은 스스로 심연의 구멍 밖으로 나올 때 비로소 시작된다는 뜻이다.
정현목 문화선임기자 gojhm@joongang.co.kr 기자 admin@reelnara.inf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