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10월31일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린 정상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 로이터=뉴스1


피트 헤그세스 미국 전쟁부 장관이 최근 방한해 대만 위기 상황 시 주한미군 차출 가능성을 시사한 가운데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갈등 문제에 대하 우리 측의 세심한 메시지 관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대(對)중국 견제 차원에서 주한미군의 역외 차출 가능성엔 대비하되 굳이 이를 부각시켜 중국과 마찰을 만들 필요는 없다는 지적이다.
다이빙(戴兵) 주한중국대사 11일 서울 중구 한 호텔에서 열린 사단법인 글로벌전략협력연구원 주최 행사에서 "일본 신임 총리가 최근 중국과 관련해 부정적인 말을 하고 있다"며 "중국으로선 받아들이기 어려우며 중일관계의 건전한 발전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지난 10일 중의원(하원)에서 '대만 유사 시 일본이 집단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는 국가 존립위기 사태에 해당할 수 있다'는 기존 발언을 철회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존립위기 사태는 일본이 공격받지 않더라도 밀접한 관계에 있는 국가 등이 공격받아 일본이 위기에 처할 수 있는 상황을 뜻한다.
쉐젠 주오사카중국총영사는 지난 8일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우리에게 달려드는 그 더러운 목을 베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지난 9일엔 "'대만 유사(有事·전쟁 등 긴급상황)는 일본 유사'라는 인식은 죽음의 길"이라며 "패전국으로서 이성과 준법 정신을 회복해 대만 문제를 생각하고 패전과 같은 민족적 궤멸을 당하는 일을 다시 겪지 않길 바란다"고 했다.
다카이치 총리의 취임 전 일본 내 각의 대만 사태 입장은 "구체적 상황에 따라 판단한다" "미국과 협의한다" 등의 원론적 수준이었다. 그러나 다카이치 총리가 직접 대만 사태를 거론하자 중국 외교부는 쉐 총영사의 극언에 유감 표명 대신 일본을 강도 높게 비난했다. 중국이 양안 문제를 주권 이슈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과 나카타니 겐 일본 방위상이 지난 3월30일 도쿄에서 논의한 '원 시어터'(One Theater) 구상 / 그래픽=머니투데이


이 때문에 한국의 세심한 대중 외교 관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헤그세스 장관은 지난 4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에서 한미 안보협의회의(SCM)를 연 이후 기자회견에서 '주한미군이 대만 유사 시 투입될 수 있느냐'는 취지의 질의에 가능성이 열려 있음을 시사했다.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대장)도 그간 '뒤집어진 동아시아 지도'를 통해 대만과 한반도 안보가 연결돼 있음을 강조했다.
이재명 대통령도 지난달 29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디젤 잠수함은 잠항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북한이나 중국 측 잠수함에 대한 추적 활동에 제한이 있다"고 말했다. 당시 중국을 사실상 북한과 같은 적으로 평가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반길주 국립외교원 교수는 "일본은 미국의 중국 견제에 적극적으로 부응해 인도·태평양 내 역할을 강화하고, 이를 통해 동중국해에서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지키겠다는 포석이 있는 것"이라며 "일본이 미국과 '안보 맞교환'을 노린다면 한국은 대만 유사 상황과 한반도 유사 상황의 연관성을 철저히 분석하며 전략적 시점이 도래했을 때 대만 사태 관련 입장을 밝혀도 늦지 않는다"고 했다.
반 교수는 "일본이 미국의 동맹으로서 군사적 입지를 다져간다면 한국은 조선업·원자력 협력 등 일본과는 차별화된 방식으로 동맹의 중요성을 부각할 필요가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조차도 대만 유사 시 미국이 개입한다고 직접적으로 밝힌 적이 없기 때문에 우리가 나서서 중국과 대척점에 설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임은정 공주대 교수는 "한국은 무역에 의존하고 있고, 해상교통로가 막힐 경우 경제에 부정적 영향이 예상되는 점을 강조하며 동중국해·남중국해의 평화 필요성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며 "이런 원칙론에 입각한 메시지를 관리할 필요가 있고 대만 유사 사태 등의 표현을 쓸 필요가 없다"고 했다.
일각에선 약 6년 4개월 만에 열린 미중 정상회담에서 무역 휴전을 합의하면서 중국이 역내에서 목소리를 키울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다이 대사는 이날 행사에서 "미국이 촉발한 관세전·무역전·기술전은 중국을 약화시키지 못했다"며 "중국은 더욱 강건하고 자신감 있는 나라가 됐다"고 자평했다.
김인한 기자 science.inhan@mt.co.kr 조성준 기자 develop6@mt.co.kr 기자 admin@119sh.inf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