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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과 삼각'지'의 중구난'방' 뒷이야기. 딱딱한 외교안보 이슈의 문턱을 낮춰 풀어드립니다.




캄보디아 당국의 범죄단지 단속으로 적발돼 구금됐던 한국인들이 18일 인천국제공항 2터미널을 통해 송환되고 있다. 최주연 기자



"최근 골든트라이앵글 지역국가(미얀마, 라오스, 태국) 및 캄보디아 등 일부 동남아 국가에서 코로나 이후 우리 국민을 대상으로 불법 행위를 강요하는 취업사기로 인해 피해사례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2024년 2월, 홍석인 당시 재외국민보호·영사분야 정부대표 겸 1.등록금납부 정보가 확인되지 않아 생활비대출이 불가합니다. 공공외교대사

2024년 2월 외교부에서 '동남아 지역 우리 국민 대상 취업사기 범죄에 유의 요망'이라는 제목으로 낸 보도자료입니다. 이 자료는 2023년 필리핀 취업사기 구금피해자 600여 명을 구조한 뒤 유사 범죄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외교부가 낸 최초 자료였습니다. 초국경 범죄네트워크에 연루된 가해자이면서 피해를 크레딧뱅크 입는 새로운 유형의 재외국민 피해가 급증하자 재발방지 및 예방을 위해 이뤄진 공지였습니다. 외교부는 기자단을 대상으로 피해자들의 신변의 안전 확보가 이뤄지기 전까지 관련 내용에 대한 '보도유예(엠바고)'를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2024년 2월 외교부 동남아 취업사기 관련 경춘선복전철 보도자료. 외교부 제공


하지만 이후 캄보디아에서 우리나라 대학생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지 추가적으로 보도유예를 요청하거나 기자단에 공지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정부가 손을 놓고 있었던 건 아닙니다. 비록 특임공관장이긴 했지만, 박정욱 당시 주캄보디아 대사는 공개행사 때마다 급증하고 있는 취업 수신금리 사기 피해에 대한 주의를 촉구하고, 정부에 인력 증원을 요청했습니다. 당시 조태열 외교장관은 행정안전부 등을 설득해 최초로 주캄보디아 대사관에 '경찰 주재관' 직위를 신설했습니다.
이후 라오스에서 초국경 범죄네트워크 사건을 다뤄온 경찰 주재관이 캄보디아 대사관에서 접수된 실종사건의 90% 이상을 해결하는 쾌거를 거두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휴대폰 할부회선 조회 말 외교부 장관 주재로 13개 부처 고위 당국자들이 참석해 해외 체류 국민의 안전 보장 정책을 구체화하는 재외국민보호위원회에서도 동남아 지역 취업사기 및 감금피해를 위한 부처 간 협업문제가 중요 의제로 다뤄지기도 했습니다.
캄보디아에서 고문으로 사망한 대학생 박모씨에 대한 실종신고가 최초로 이뤄졌을 때도 외교부와 경찰청, 국정원의 담당부서는 해당 사안을 논의하고, 대통령실 국가안보실(NSC)에 보고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왜, 이런 분주한 움직임 속에서도 정부는 언론에 사전에 알려 협조를 구하고 보도자제를 요청하지 않은 것일까요. 본래 재외국민 안전을 위한 '보도유예 요청'은 무분별한 중계와 불분명한 정보확산으로 초래할 수 있는 추가적인 국민 안전 피해나 외교 실패, 정부 불신을 막기 위한 조치인데 말입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무관심과 무능으로 무너진 재외국민 보호체계
일단 업무량이 문제였습니다. 언론이 표현하기 좋아하는 '급변하는 정세'에는 '해외 체류 중인 우리 국민의 안전 불안'이 포함돼 있습니다. 생각해볼까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분쟁에서 이란·레바논 등에까지 확산된 중동분쟁, 인도-파키스탄 분쟁 등은 모두 현지에 체류하는 우리 교민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대형 사건입니다.



2024~2025 재외국민 보호 관련 외교부 주요 공지 및 보도자제 요청 현황. 그래픽=문재연/제작툴=piktochart


여기에 지구온난화로 극심해지는 세계 곳곳의 자연재해도 현지에 체류하거나 여행 중인 우리 국민의 안전을 위협합니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강력하고 배타적인 이민정책도 미국을 오가는 우리 국민들의 안전을 위협하죠. 그렇게 올 한 해 외교부가 기자단에 보도자제를 요청하거나 알린 재외국민 안전 사건은 10건이 넘습니다. '광기에 휩싸인' 언론보도가 이뤄지지 않도록 협조를 요청해야 할 만큼 중대한 사건이 최소 한 달에 한 번은 있었다는 뜻입니다.
재외국민 안전 사건의 유형은 나날이 복잡해지고 다양해지고 있는데, 이를 책임져야 할 조직과 부서들은 절반 가까이 감축된 상황에서 쏟아지는 업무를 감당해야 했습니다. 국제범죄 공조체계 붕괴 우려 속에서도 정부는 2023년 조직개편을 통해 경찰의 외사 기능을 대폭 축소했습니다. 1,100명에 달했던 경찰 외사기능 정원은 경찰청 국제협력관실이란 이름으로 49명으로 쪼그라들었습니다. 국내 체류 외국인의 안전 사건과 해외 체류 우리 국민의 안전, 아울러 해외 비자정책 등을 총괄해야 하는 외교부 영사안전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재외동포청의 신설을 이유로 당시 정부는 해외에 체류하는 우리 국민의 안전 대책을 짜고 이행하는 재외국민보호과와 해외 체류 우리 국민이 저지른 범죄사건에 대응하고 국내로 송환하는 재외국민안전과의 기능을 하나로 합친 뒤, 인력을 절반 이상 줄여버렸습니다. 복잡한 취업사기 사건에도 불구하고 국정원은 당시 대통령의 관심에 따라 마약범죄 근절 작업에 우선 집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비상계엄으로 인한 정책결정자의 공백은 정부의 재외국민 보호기능을 한 번에 무너뜨렸습니다. 정권교체로 자신의 인사가 불투명해진 실장급 이상의 고위직들은 정치권 눈치 보기에 급급했고, 재외국민 안전은 현안이 터질 때마다 실무자들이 그때그때 대응하는 '땜방식 대처'가 줄을 잇기 시작했습니다.

'2차관' 정치인사와 정체된 공관장 인사가 지연시킨 재외국민 보호체계 재정비



캄보디아에 파견된 정부합동대응팀인 김진아(오른쪽) 외교부 2차관과 박성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이 18일 인천국제공항 2터미널을 통해 귀국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 최주연 기자


2023년 이후 반쪽짜리 인력으로 해외 체류 중인 우리 국민들의 안전을 책임져야 했던 해당 부서는 올 상반기만 해도 티베트 지진과 LA산불,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이민정책 강화, 그리고 동남아 피랍사건 등을 책임져야 했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재외국민 안전대책을 총괄해야 할 '외교부 2차관'의 부재입니다. 현 김진아 외교부 2차관은 이재명 캠프 출신의 인사로, 외교부 직무 경험이 없는 인사입니다. 연령으로 따지면 외교부 국장급 인사들보다 젊어 당시 '파격 인사'라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2차관으로서 주어진 책임과 의무를 다하면 연령은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하지만 김 차관의 경력 부족은 2차관의 가장 중요한 덕목인 재외국민 보호에서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지난 2023년부터 2024년까지만 해도 이도훈∙오영주∙강인선 당시 외교2차관은 피랍사건에서부터 산불 및 자연재해 사건까지 해외 체류 중인 국민 안전에 변수가 발생할 때마다 외교부 본부와 공관, 나아가 경찰 및 국정원 인사들을 불러들여 합동점검회의를 열었습니다. 미국 조지아 구금사태가 발생했을 때도, 이번 캄보디아 취업사기에 따른 대학생 사망사건이 논란이 되기 전에도, 2차관의 움직임은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지난달 미국 조지아주 구금사태 당시 조현 외교장관에서부터 정기홍 재외국민보호·영사분야 정부대표 겸 공공외교대사, 심지어 박윤주 외교부 1차관까지 2차관을 제외한 재외국민 핵심 책임자들이 문제 해결에 총력을 기울였죠.
동시다발적으로 재외국민 안전 사건이 발생하면 '장관을 보좌'하는 업무도 해야 하는 2차관이 주도적으로 경찰과 국정원, 외교부의 실무진들을 불러들여 현안을 파악하고 점검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와 관련한 2차관 주재 합동대책회의는 단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이재명 대통령의 특임공관장 전원 귀임 지시로 주요 대사관들은 대사 대행체제 속에서 어떤 의사결정을 하고 책임을 지기 어려운 환경에 처해졌습니다. 10년째 사실상 동결 상태에 있는 공관 근무 수당으로 그만두는 인력이 늘어나기만 하고 있는데 이런 실태를 점검하는 작업은 전무했습니다. 올해는 비상계엄과 정권교체로 매년 열리는 공관장 회의조차 열리지 않았거든요.

눈앞에 놓인 현안 홍보에 급급한 새 정부, 제도 차원의 재외국민 보호 지연



미국 이민당국의 불법체류 단속으로 구금된 한국인 근로자 300여 명의 석방절차를 마무리 짓기 위해 미국을 방문했던 조현(왼쪽) 외교부 장관이 9월 12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해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 6월 정부 출범 이후 난항을 겪고 있는 한미 관세협상과 동맹현대화 협의, 대중외교 및 대일외교 등의 실적 등을 홍보하기 위해 외교부 장관과 차관들은 그 여느 때보다도 기자간담회와 언론 인터뷰에 적극적으로 임했습니다. '각 부처와 안보실에서 적극적인 실적 홍보에 나서라'는 대통령실 정책홍보 지침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국가안보실과 외교부 장관이 이처럼 빈번하게 언론 앞에 서는 것은 매우 이례적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정책 방향성을 정하고 조율해줘야 할 고위직들이 그때그때 실적 홍보에 치중하다 보니 궁극적으로 해결돼야 할 체계를 다루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더구나 캠프 인사들의 공적을 치하하는 '특임공관장' 인사를 위해 공석인 40여 개 공관장에 대한 인사 결정도 미뤄지면서 무너진 재외국민 보호 대응체계를 재정비하는 작업은 지연되기만 했습니다.
결국 현재까지 국제범죄 실태를 실시간으로 추적하기 위해 확보돼야 할 경찰청 외사 인력도, 재외국민 안전문제가 발생하면 즉각적으로 대응해야 할 외교부 담당 부서의 인력도, 갑작스러운 특임공관장의 귀임조치로 단 3명이서 캄보디아 현지 온라인스캠 범죄와 납치구금 피해를 복합적으로 점검하고 영사조력을 제공해야 할 대사관 인력도 정권 출범 넉 달이 다 되도록 충원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10년째 사실상 동결 수준인 재외공관 근무 수당으로 행정직원조차 구하기 어려워진 대사관 근무환경에도 아무도 관심이 없습니다.
행정조직은 복지부동해지고 사건이 발생할 때만 일일이 대응하는 처참한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업무가 종료됐다"며 구조를 요청한 취업사기 피해 국민에게 시큰둥하게 발언을 한 대사관 근무 직원은 법적으로 외무공무원이 아닌 현지 대사관에서 계약한 외부 경비업체 직원이었습니다. 공관에서는 이렇게 주먹구구로 공백을 막고 있다 보니 부처 칸막이뿐만 아니라 대사관과 계약한 용역업체들과 정보공유조차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됐습니다.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오고 있습니다.
정책결정자들이 제도 개선에 무관심할 때, 행정 조직은 조금씩 무너집니다. 특정 정권의 책임을 따져대는 논쟁은 무의미합니다. 윤석열 정부는 대한민국 외교부와 경찰청, 국정원 등 재외국민 안전을 책임져야 할 3대 부처의 대응체계를 무너뜨렸고, 이재명 정부는 이번 사태가 발생할 때까지 그 체계를 정비하는 작업을 진행하는 데에 무관심했습니다. 그리고 언론은 사실관계를 따지기보단 논란을 부풀리는 데에 힘을 쏟았습니다.
한동안 캄보디아에서는 교민사회나 외교관계보단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인 한국인 구조 작업에 힘을 모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국가에서 비슷한 사태가 발생했을 때, 과연 우리 정부는 체계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까요? 그때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듯 사람을 투입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까요?
이번 사건이 재외국민 보호 대응체계를 재정비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다만 열심히 실무에서 몸으로 뛰고 있는 당국자들이 진심으로 걱정됩니다.
문재연 기자 munjae@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