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분명 지금 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어디로든 내게 허용된 공간으로 몸을 움직일 수 있다. 그러나 때때로 그 자유는 제한된다. 지금 해야 할 일이 언제나 내 자유의지에 선행한다.
그렇기에 자유를 논하는 데에 있어 당연하듯 등장하는 ‘자유의지 대 결정론’은 그 어떤 영화의 식상한 클리셰보다도 더 클리셰적이다. 지금 나를 옭아매는 것은 해야 할 일이지만 그 일은 내가 자유의지로 선택한 삶의 형식에서 파생된 것이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나를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로 묘사할 때마다 적을 두었던 곳을 벗어나 세상 밖으로 나가 삶을 일궈보겠다는 선언들이 있었다. 가장 일반적인 자유에 대한 관념은 어떤 경계 바깥에 존재한다. 소속감과 안락함, 일정한 트랙에서 벗어나 무모함의 원심력에HTS시스템
몸을 싣는 순간에서야 비로소 자유를 획득한다. 자유는 문고리를 비틀고 나서야만 얻을 수 있는 위험한 것이다. 하지만 막상 그 경계를 나서도 생각보단 자유롭지 않다. 내 자유를 얽매는 것은 소속이 아닌 내 시간에 대한 결정권이기 때문이다. 버나드 맬러머드의 소설 ＜점원(The Assistant)＞(2023)는 인간이 어떻게 근면함이라는 스스로 만든 감옥 속매도
에 갇히는지를 섬뜩하게 보여준다.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대의 자유는 자신의 삶을 창조할 자유다. 하지만 빌런이 되지 않으면서 삶을 창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빌런은 자신의 세계관이 세상을 전복하든 누군가의 생명을 취하든 간에 그것의 실현에만 집중하기에 빌런이 된다. 물론 세상을 망가뜨리지 않고도 스스로 삶을 창조한 예술가도 많지만제이웨이 주식
, 그런 기회는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빅터 프랭클은 환경, 질병과 같은 제약으로 인해 창조적 가치를 실현할 수 없는 순간이 찾아와도 여전히 체험의 영역에서 삶에 충실할 수 있다고 했다. 즉 자연, 사람뿐 아니라 예술을 온전히 또 깊이 있게 체험함으로써 스스로 삶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소3천만원투자
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얻으려면 소소하지만 확실한 자유를 추구해야 한다. 행복은 추구의 대상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결과로 따라오는 것이라는 것을 모두가 안다. 그러니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 나만의 공간에서 실현 가능한 자유를 추구하는 것이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얻는 길이다. 하지만 아무도 없는 그 공간에서 섬네일 하나를 고르는 순간마저 외부의 목소리손오공게임
로부터 자유롭기 어렵다. 그럴 때는 실시간 TOP 10과 같은 리스트, 평점 사이트의 숫자, 권위자의 추천도 모두 거부하고서 기억 속에서 잊힌, 오래된 영화를 다시 꺼내어 보아야 한다. 이를 통해 단지 선택의 자유뿐 아니라 내 마음대로 해석해 보는, 그 영화가 숨겨두었던 또 다른 서브 텍스트를 발견하는 자유 또한 누린다.
<트루먼 쇼>는 그런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영화 중 하나다. 한 손에는 에리히 프롬의 책 <자유로부터의 도피>(2020)를 들고서, 현기증을 불러오는 격언들만 남긴 험상궂은 철학자들과 달리 삶과 자신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했던 이 프랑스 철학자가 소파 반대편에서 함께 영화를 보고 있다고 상상해 본다. 트루먼 쇼의 일반적인 해석은 매스 미디어에 대한 풍자다. 하지만 짐 캐리의 슬랩스틱 연기에도 웃지 않고 잠자코 영화를 보던 프롬 씨는 문득 이렇게 말한다.
‘이건 안락함이라 일컬어지는 삶의 전형성에서 벗어나 실존적 자유를 택하는 인물의 이야기다!’

포스터 / 사진출처. IMDb"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09/18/ked/20250918103640223pvtu.jpg" data-org-width="1200" dmcf-mid="BPvsSIOJTQ"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9/18/ked/20250918103640223pvtu.jpg" width="658">

영화 <트루먼쇼> 포스터 / 사진출처. IMDb


진짜 하고 싶은 말은 가장 나중에, 결말부터 보자
이 영화에서 긴장감이 가장 극에 달하는 순간은 신과 같은 존재였던 크리스토프가 모든 물리적 압박을 거두고 처음으로 트루먼에게 말을 건네는 장면이다. 그가 ‘내가 만든 그 세계는 안전해. 밖은 위험한 곳이야.’라고 말하는 순간이다.

스틸컷 / 사진출처. IMDb"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09/18/ked/20250918103641469tsov.jpg" data-org-width="1200" dmcf-mid="bnVz2BqyCP"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9/18/ked/20250918103641469tsov.jpg" width="658">

영화 <트루먼쇼> 스틸컷 / 사진출처. IMDb


영화는 처음엔 트루먼이 피지섬에 가고 싶어 한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다음에는 잡지를 찢어 실비아의 얼굴을 콜라주 하는 그를 보고 피지섬에 가고 싶은 것이 실비아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이 둘 모두 그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아니다.
트루먼은 마음 한구석에서 자신을 둘러싼 세계가 어딘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며 살아왔다. 그의 세계는 본질적으로 거짓이지만 그를 제외한 모두가 그 거짓말에 동참하고 있기에 그를 둘러싼 거짓 세계의 장벽은 두껍다. 피지섬과 실비아는 맥거핀이다. 엔딩에서 실비아가 트루먼을 맞이하러 방을 뛰쳐나가는 장면이 있긴 하나 두 사람이 서로를 끌어안고 나서야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분명 영화가 끝났다고 느낀다.
그것은 이 영화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가 트루먼이 피지섬에 가는 것도, 실비아와 재회하는 것도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거짓 세계를 벗어나 진짜 삶으로 뛰어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자유의 문고리를 비트는 순간 영화가 끝나는 것은 그것이 이 영화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이기 때문이다.
프롬은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현대인은 자유를 두려워할 뿐만 아니라 그것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그 자유라는 엄청난 부담을 덜어내기 위해 스스로 권위에 복종한다고 말한다. 트루먼 쇼의 크리스토프는 프롬이 제시한 권위주의형 인물의 전형이라 할 만하다. 그가 트루먼을 지배하는 수단은 공포심이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에 삼켜져 버린 아버지, 동료는 매일 불경기라고 말하며 겁을 주고, 아내는 입버릇처럼 당신이 이곳을 떠나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없다고 말한다.

표지 / 이미지출처. yes24"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09/18/ked/20250918103642725kset.jpg" data-org-width="1200" dmcf-mid="KC579qzTv6"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9/18/ked/20250918103642725kset.jpg" width="658">

[좌] 에리히 프롬 / 사진. ⓒMüller-May / Rainer Funk, 출처. 위키피디아 [우] 도서 <자유로부터의 도피> 표지 / 이미지출처. yes24


이는 프롬이 지적한, 권위주의형 인물이 타인의 복종심을 유도하기 위해 사용하는 전략과 완전히 일치한다. 만약 이 영화를 단순히 미디어에 대한 풍자로 본다면 그 미디어 환경이 완전히 뒤집어진 지금에는 통용될 수 없는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에도 이 영화의 이야기가 사람들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것은 그 이상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또 이 영화의 각본을 쓴 앤드류 니콜의 필모그래피에도 힌트가 있다. 그는 ＜가타카(Gattaca)＞(1997)를 비롯한 여러 영화에서 주어진 환경과 제약을 넘어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인물의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그려왔기 때문이다.
영화는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렌즈다
이 영화는 해피 엔딩일까? 베드 엔딩일까?
트루먼이 문을 열고 나가서 좋은 직장을 다니며 화목한 가정을 꾸리고 좋은 삶을 영위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그는 나이만 먹었을 뿐 정신적으로는 사회생활을 할 능력이 거의 없는 어린아이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트루먼이 문을 여는 순간 분명 행복감을 느낀다. 어서 빨리 그 문을 열라고 응원하게 된다. 이 모순적 감정은 무엇일까? 일반화된 인식의 렌즈(안락한 삶이 최고야. 자유는 필요 없어.)와 상반되는 이 감정의 렌즈(어서 그 문을 열어! 트루먼! 너의 진짜 삶을 살아!)는 무엇을 말하려는 걸까?

스틸컷 / 사진출처. IMDb"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09/18/ked/20250918103643961almf.jpg" data-org-width="1140" dmcf-mid="9GkCylhLS8"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9/18/ked/20250918103643961almf.jpg" width="658">

영화 <트루먼쇼> 스틸컷 / 사진출처. IMDb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2009)에는 다음과 같은 대사가 등장한다. 둘째인 이반이 막내인 알료샤에게 사람들이 어떻게 스스로 자유 헌납하게 되는지를 여러 페이지에 걸쳐 장황하게 늘어놓는 장면인데 마치 크리스토프가 트루먼에게 건네는 대사라고 하여도 거의 무방할 정도다.
‘너는 세상에 나가고 싶어 하는구나. 자유에 대한 약속만 있을 뿐 빈손으로 말이다. 하지만 순진하고 본래 비천한 인간들은 그 약속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여 두려워하고 무서워할 뿐이다. 왜냐하면 인간에게나 인간 사회에서 자유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은 결코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19세기 작가의 사상과 인간 심리를 깊이 파고든 치밀한 면이 니체나 카뮈와 같은 실존주의 철학의 근원이라는 것은 언제나 놀랍다. 하지만, 이 이반의 장황한 대사를 수십 번 읽는다고 하여도 내 삶에서 일어나는 실존적 자유에 대한 갈망과 안락함에 대한 욕구 사이의 충돌을 이해하긴 어렵다.
하지만 트루먼 쇼의 엔딩을 볼 때면 너무나도 쉽게 내 모든 인식에 상반되는 그의 액션에 공감하게 되고, 또 응원하게 되고, 당연하게도 이 장면을 해피엔딩으로 받아들인다. 바로 이점이 소파에 파묻혀 영화를 한 편 감상하는 일을 고전 문학이나 철학서를 읽는 것만큼이나 사람을 지적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이 모순적 감정을 깊숙이 파고드는 것, 그 순간의 느낌을 이해하는 것,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체감하도록 만드는, 내면의 지각변동이 일어나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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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트루먼쇼> 스틸컷 / 사진출처. IMDb


자유를 위해 비틀어야 하는 문고리는 그저 조직을 벗어나는 일이 아니었다. 우리가 진정으로 열어야 하는 문은 언제나 그 인식의 문이기 때문이다.
창조하는 일은 분명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대의 자유이지만 어떠한 것을 창조하든 간에 시작 단계에서는 무력감이 가장 먼저 찾아오게 마련이다. ‘어차피 안돼. 이미 누군가 이런 거 다 했어. 어차피 아무도 이 글에는 관심을 안 가질 거야.’ 그 무력감은 안전한 울타리를 벗어나지 말라고 말하는 내면의 크리스토프를 만든다. ‘그곳을 벗어나지 마. 그 안전한 세계에 머무르란 말이야. 그냥 남들 하는 데로 해.’ 하지만 내게 무력감을 선사하는 이 돔에서 나가기 위해 인식의 문에 달린 문고리를 비튼다. 그리고 난 그것이 삶에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자유이며 지복이라 여긴다. 이건 이처럼 하나의 영화를 깊이 읽어내었을 때 배울 수 있다. 자유에 대한 약속만을 손에 쥐고 세상 밖으로 나간 트루먼을 응원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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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트루먼쇼> 스틸컷 / 사진출처. IMDb


박정민 칼럼니스트